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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본 니체의 영원회귀작문 2023. 4. 27. 03:14
오늘 문득 니체의 영원회귀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생각났다. 영원회귀를 일기에 비유해 보는 거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첨삭 과정을 거친다. 초안을 작성하고 난 후 하루 정도 지난 다음에 글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부족한 내용은 추가하고 필요 없는 내용은 지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글은 남한테 보여줄 수 없는 글이다.
하지만 일기는 그런 과정이 필요 없다. 우리가 일기를 쓰는 것은 그때의 일이나 감정, 나의 행동 등을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서다. 남이 볼 것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고, 미래의 나의 시선으로 보면서 첨삭할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 나중에 수정하려 한다면 일기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되어 더 이상 일기라고 볼 수 없게 된다. 초등학생 때의 내가 쓴 글을 대학생인 내가 수정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기는 이런 면에서 영원회귀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일기를 볼 때 단적이지만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일기를 통해서 그때의 사건, 그날의 감정과 행동을 무한히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이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또는 그 사건이 부정적인 기억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날의 일기를 수정하거나 버리는 것이 적절한 행동일까? 그건 아니다. 애초에 일기에서 지워버린다고 그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일 적절한 행동은 '그땐 그랬지' 하면서 그날을 추억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굳이 일기를 쓰지 않아도 무한히 인생을 재생할 수 있다. 과거의 일은 좋든 싫든 우리의 뇌에 기억으로 남고, 내가 기억하지 못 해도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거나 기록해 놓은 것들로도 되짚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중에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그땐 그랬지' 하면서 긍정하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