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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독 소개글 - 신비한 마을의 치히로
    번역: 만화·애니 관련 글 2020. 1. 8. 16:23

    애니메이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출처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공식사이트, 팸플릿 등

    원문 주소

     

    서문

     오역, 오탈자 지적 환영.

     

    본문

    신비한 마을의 치히로 : 이 영화의 목표


    미야자키 하야오


     이 작품은 무기를 휘두르거나 초능력으로 싸우지는 않지만, 모험이라고 불러야 할 작품이다. 모험이라고 해도 선악의 대결이 주제인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모두 섞여 존재하는 세상에 소녀가 흘러들어와 수행하고, 우정과 헌신을 배우고, 지혜를 배워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이다. 소녀는 일단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지만, 세상이 없어지 않는 것처럼, 악을 멸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살아갈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애매하게 돼버린 세상, 애매한 주제에 침식하며 모든 것을 잡아먹으려 드는 이 세상을, 판타지의 형태를 빌려 또렷하게 그려내는 것이 이 영화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둘러싸이고, 지켜지고, 기피돼가며, 살아간다는 것이 흐릿해져가는 느낌이 드는 일상속에서, 아이들은 연약한 자아를 크게 보이게 하려는 수 밖에 없다. 치히로의 갸날픈 손발이나, ‘그리 쉽게 웃진 않을 거예요’라는 듯한 퉁명하게 볼이 부은 표정이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도 현재가 뚜렷하며,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에서 위기에 직면한 때에, 자기도 모르는 적응력이나 인내력이 솟아나서 강단있는 판단력이나 행동력을 발휘하는 생명을, 치히로는 자기가 맡고있는 일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패닉이 되어 ‘말도 안돼’라고 그저 웅크리고 앉아만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은 치히로가 겪은 상황이 되면 곧바로 사라지거나 잡아 먹힐 것이다. 치히로가 주인공이 될 자격은 실은 다 잡아먹히지 않게 된 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대 치히로가 미소녀이거나, 유례가 없는 특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서 주인공이 된 것이 아니다. 그 점이 이 작품의 큰 특징이고, 그래서 이렇게 10살 여자아이들을 위한 영화에서도 있을 법한 현실적인 등장인물이 된 것이다. 말은 힘이다. 치히로가 길을 잃고 들어온 세계에서 말은,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다는 신중함을 가진다. 유바바가 지배하는 목욕탕에서는 ‘싫어’, ‘돌아갈래’라고 한마디라도 입에 댔다간 마녀가 바로 치히로를 내쫓아서, 치히로는 어디로든 가지 못해 사라지거나, 잡아 먹힐 때 까지 달걀을 낳는 닭이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반대로 ‘여기서 일할래’라고 치히로가 내뱉으면, 아무리 마녀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다. 요즘 말은 한 없이 가벼운, 내키는 대로 다 말하는 거품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현실의 속이 텅텅 비어서기 때문만이 아니다. '말은 힘이다'라는 것은 지금도 진실이다. 힘이 없는 공허한 말이 무의미하게 넘쳐나는 것일 뿐이다.

     

     이름을 빼앗는 행위는 사람을 부르는 명사가 바뀐 것 뿐만 아니라, 상대를 완전히 지배하는 방법이다. 센은 치히로라는 이름을 자기자신이 잊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돼지우리의 부모를 직접 찾아가고, 돼지 모습이 된 부모에 대해 평정심을 찾게 된다. 유바바의 세상에서는 늘 잡아 먹히는 위기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힘든 세상 속에서 치히로는 오히려 점점 생기가 넘친다. 퉁명스러워 보이는 캐릭터성은 영화의 대단원에서는 확하고 매력적인 표정을 가지게 된다. 세상의 본질은 지금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말은 의지이고 자기 자신이며, 힘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설득력을 가지고 말하려는 것이다.

     

     일본을 무대로 한 판타지를 만드는 의미또한 거기에 있다. 옛날 이야기라도, 도망칠 구멍이 많은 서구의 옛날 이야기는 싫다. 이 영화는 꽤 있는 이세계물의 한 아류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옛날이야기에 등장하는 ‘참새의 집’이나 ‘쥐의 저택’의 후손격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평행세계라고 말 안해도, 우리들의 선조는 참새의 집에 출입 금지당하거나, 쥐의 저택에서 잔치를 즐기거나 했던 것이다.

    [역자 주 :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일본에는 많은 전통적인 이야기들, 전승들, 시나 설화들이 전해져 오는데, 그 중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같은 이야기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들이 ‘풍요로운’상태에서 이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당장에 神隠し[카미카쿠시]는 전승이나 옛날이야기들에서 나오는, 신이나 요괴가 사람을 유괴한다는 뜻으로 민간 설화에는 많이 나오는 주제다. 감독은 이 영화를 그러한 옛날 이야기들과 민간설화들의 스핀오프같은 느낌으로 임했다고 볼 수 있다]

     

     유바바가 지내는 세계를 의양풍(일본 근대에 발생한 서양식 건축양식과 일본 전통 건축양식이 섞인 건축 양식)으로 한 것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서 꿈인가 현실인가 구분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만, 동시에 일본의 전통적인 의장(意匠 : 시각을 통하여 미감(美感)을 일으키는 것. 물품의 형상, 모양, 색채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으로서, 의장권의 대상이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여러 이미지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속적인 공간이야기, 전승, 행사, 의장, 신들의 이야기에서 주술에 이르기까지가 다 얼마나  풍부하고 유니크한지는 사람들이 아직 모를 뿐이다. 카치카치야마(마을의 한 할머니를 죽이고 할아버지에게 할머니 고기로 만든 국을 먹인 너구리를 토끼가 가서 복수하는 내용의 동화)나 모모타로(냇가에서 큰 복숭아를 발견한 노부부가 열자 남자아이가 나타나 모모타로라고 이름을 짓고, 이후 자란 모모타로가 동물 친구들과 귀신섬에 가서 귀신을 싸워 이기는 내용의 동화)는 확실히 설득력을 잃었다.[역자 주 : 즉, 유의미한 동화가 아니다] 하지만, 민화(民話)풍의 아담한 세계에 전통적인 것을 모두 엮어 넣는 것은 빈약한 발상이 되겠다. 아이들은 높은 기술력에 둘러싸여 얄팍한 공업제품 속에서 점점 근본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얼마나 풍요로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를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통적인 의장을 현대에서 통하는 이야기에 짜 넣어서 또렷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으로 끼워 넣는 것으로, 영화의 세계는 신선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들이 이 섬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계가 불분명한 요즘, 설 장소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장 무시당하고 있을 것이다. 장소는 과거이며,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를 가지지 않은 사람,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다시 그늘이 지듯이 사라지거나, 잡아먹히거나 달걀을 계속 낳는 닭이 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중 10살인 여자 아이들이 자신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알게되는 작품이 되도록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참고 :

    https://harurin5.hatenadiary.org/entry/20080625/1214406495

    http://jidoubunka.com/janome/janome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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